일반적으로 석유 위기는 전세계적인 유가 급등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몇 주~몇 달만에 유가가 급등하면 해당 영향권 국가들의 경제는 타격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이같은 현상을 ‘석유 위기’라고 부릅니다.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석유 위기는 각각 1973년, 1979년, 1990년에 발생했습니다. 이 중에서 첫 번째 위기는 “인적 요인”에 의한 위기였고, 이후의 두 위기는 “통제 불가능한 요인”에 의해 초래되었습니다.
선술한 세 번의 위기 이외에 2000년, 2020년에도 중견급 위기가 발생했습니다. 특히 2020년도의 경우 크루드오일 인도가격이 적자를 찍기도 했습니다.
1973년 석유 위기:
1973년 석유 위기는 제4차 중동전쟁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집트와 그리스는 이스라엘의 시나이반도와 골란고원을 점령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미국을 필두로 한 서방국들은 이스라엘을 지원하고 있었기에, 결국 아랍국가석유수출기구(OPEC과 다른 기구)는 석유 엠바고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엠바고 최초 대상국은 캐나다, 일본, 네덜란드, 영국, 미국이었습니다. 이후 엠바고는 포르투갈, 로디지아, 남아공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미국에 수입되는 크루드오일 가격은 배럴당 3달러에서 엠바고 이후 12달러로 폭등했습니다. 이 위기로 인해 미국은 석유 공급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미국 이외의 국가들이 필수 원자재 공급을 묶어버리면 미국 경제가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에 말이죠. 당시에 미국은 “석유의 무기화”라는 신조어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1979년 석유 위기:
1979년 석유 위기는 이란혁명으로부터 초래되었습니다. 군주제였던 팔라비 왕조가 전복되고 호메이니가 이란의 최고지도자로 부상한 시점이죠. 호메이니는 최고지도자가 된 이후 이란을 ‘이슬람 공화국’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이란혁명은 중국의 1911년 신해혁명과 매우 비슷합니다. 신해혁명은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을 성립시킨 중국의 혁명을 일컫습니다.
따라서 이란혁명은 이란의 역사에 있어 엄청난 의의를 지닙니다. 이란혁명 도중 이란의 석유생산 및 수출은 급격히 둔화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국제석유시장에서는 매달 50만 배럴만큼 공급 부족 현상이 일어났고 결국 유가는 날카롭게 상승했습니다.
이후 12개월 동안 크루드오일 가격은 2배 넘게 상승해 배럴당 $39.50가 되었습니다. 미국은 또다시 엄청난 석유부족 현상을 겪었고, 미국 국민들이 차에 기름을 넣으려고 주유소에 길게 줄을 서서 대기하는 진풍경이 연출되었습니다. 1979년 석유위기는 1973년 석유위기보다 짧았고, 그로 인해 공포를 줄만한 요소가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실제 석유 공급 부족 현상의 정도는 생각보다 덜했습니다. 이유인즉 당시 이란의 총 석유 생산량은 전세계 생산량의 1/10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이죠.
1990년 석유 위기:
1990년 석유 위기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발생했습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군은 신속히 군사공격으로 이라크에 대응했습니다. 이 시기 동안 주요 석유 생산국인 이라크와 쿠웨이트는 국가 마비 상태에 빠졌으며, 국제 석유 공급량은 또다시 가파르게 떨어졌습니다.
배럴당 17달러였던 월 평균 크루드오일 가격은 10월에 36달러까지 상승했습니다. 이번 세 번째 석유위기의 가격 상승분은 첫 석유위기 가격 상승분보다 훨씬 적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1991년 소비에트연방 해체와 제3차 석유 위기 사이에는 직접적인 연관 관계가 적다는 점 또한 분명히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소비에트연방 몰락의 직접적인 원인은 내부적인 문제로 봐야 할 것입니다.
2000년도 석유 “위기”:
먼저 정확히 짚고 넘어가자면, ‘2000년도 석유 위기’는 사실 2000년도 한 해 동안 발생한 것이 아니라 2000년도부터 시작해 총 8년에 걸쳐(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기간) 크루드오일 가격이 가파르게 올랐던 현상입니다. 2000년도 크루드오일 시초가는 $23.70였지만 2008년 최고가는 $147.27로 무려 500%가 넘게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는 1차 석유위기보다도 훨씬 큰 상승폭입니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유가 급등을 직접적으로 초래했다고 할만한 중대 이슈는 없었습니다. 2000년도 이후 중국의 급격한 경제발전이 국제 석유 수요를 이끌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말이죠. 높은 석유 수요는 곧 크루드오일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습니다. 유가 상승의 배경으로는 연준위의 양적완화 조치를 꼽을 수도 있겠습니다. 연준위가 미 달러를 너무 많이 찍어냄에 따라 달러화 가치가 엄청나게 하락하게 되었으니까요. 달러화의 가치 하락은 크루드오일 가격을 장기적으로 상승시켰을 가능성이 큽니다. 또한 북한 핵문제, 이란 핵문제, 이스라엘vs레바논 분쟁 등의 이슈들도 유가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을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이유에서든 21세기 초는 정유시장의 급격한 발전으로 점철되는 시기였습니다. 만약 ‘크루드오일이 배럴당 60달러’라고 하면 오늘날을 기준으로는 가격이 저렴하게 느껴지는데, 이는 21세기 초 동안 유가가 상당히 많이 올라버렸기 때문입니다.
2020년도 석유 “위기”
석유 위기는 대부분 유가 급등으로 인해 초래됩니다. 하지만 2020년의 석유 위기는 오히려 과도한 유가 급락으로 인해 초래되었습니다.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는 크루드오일 가격 결정자 역할을 차지하기 위해 미국 석유 업자들과 경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이 시기에 코로나 폐렴이 전 세계를 휩쓸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크루드오일 가격은 2020년 1월 $65.65에서 무려 90%나 폭락해 4월에는 $6.5까지 하락했습니다.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크루드오일 가격 하락은 소비자들에게는 희소식입니다. 가솔린 가격이 하락하게 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크루드오일 가격이 저 정도로 폭락하게 되면 이는 거시경제에 중대한 문제를 초래하게 됩니다. 비록 하이퍼인플레이션 현상이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실업률과 부도율 상승은 엄청난 공포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결론
종합하자면, 사실 앞서 열거한 세 번의 석유위기에 대해 모르더라도 대한민국에서 크루드오일 트레이딩을 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습니다. 그저 크루드오일 재고량과 OPEC 생산량에만 집중하면 될 뿐이죠.
하지만 크루드오일 가격 변동의 원인을 알고 싶으시다면 크루드오일의 가격 변동에 익숙해지셔야 합니다. 또한, 역사적으로 다양한 리스크가 발발했을 때 대중의 심리 변화가 어떻게 펼쳐지는지에 대해서도 높은 이해도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때문에 세 번의 석유위기에 대해 공부하는 것은 큰 자산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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